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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봄. 그 여자의 봄 여행길. 그것은 사랑

  • 입력 2024.03.15 17:32
  • 기자명 양지원(문화예술학 박사/MD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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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김정호 작가의 렌즈에 담긴 피사체는 사랑과 지혜의 등불, 호롱불 마냥 빛을 발한다. 하염없이 걷는 이들에게 찻잎 한잔 띄운 물을 건네주며 “숨고르기를 하라”면서 여행객의 등을 쓰다듬어주는 그런 빛과 같다.

용기. 세상을 끌어안는 항아리의 지혜

식생활에서 도구로 사용하는 매우 소박한 토기가 작가의 포토 세계에서는 비범한 쓰임의 결정으로 승화된다. 작가의 작업에는 그의 내적 물음에서 나오는 이유, 지금 셔터를 누르는 이유가 분명하다. ‘여인이여! 사랑을 다시 시작하라’라는 대지의 순환 의지를 작품에서 나타내고 있다.

항아리가 모여 있는 장독대는 신성하다. 다완(茶碗)에 담긴 정안수가 동인 장독대는 새로운 장소의 합류로 혹은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새내기, 합격을 기원하며 기도하는 자녀를 둔 어머니의 묵은 기침을 듣는 장소이다.

새벽의 닭이 우리에서 홰치며 나오는 싸리문 안의 통로이다.

새벽 기상 후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는 염원의 손길과 바람의 찰 나이다. 보전되어야 하는 우리 삶의 환경은 훼손된 지 오래다. 작가의 시선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 사랑이 지금

그 해 집안의 가족 건강을 기원하며 정성 들여 손으로 빚는 여인의 ‘장 담그기’의 맨 마지막 순서로 놓치지 않아야 하는 것은 해충과 상서롭지 못한 것이 끼어들지 않도록 장독대 위 항아리를 정돈하여 정성을 주는 것이다. 동여맨 하얀색의 버선코를 두 르고 장맛이 온전한 숙성이 되도록 손을 모아 경건한 몸짓으로 올리는 여인의 기도는 한해 가족과 이웃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랑의 염원이다.

작가는 봄바람에 일렁이며 지평 위로 솟아오르는 진흙과 바람 결의 내음을 맡는다. 자연의 순간을 호흡한다. 긴 여정에서 카메라의 눈 가까이 다가온 마을 근처의 다다름에 발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셔터는 가족 울타리의 건강을 지켜내는 여인의 사랑을 담는다.

세월을 담은 숲. 공간에서 꿈을 꾼다!

길 떠나는 진경산수 화첩 여행, 눈감은 허공에 그리는 길이 있다. 소나무 숲길이 있는 곳에서 그는 숲의 천년을 생각한다. “숲길을 지나면 청정한 느낌이 듭니다” 김정호 작가의 말이다. 그가 꿈꾸는 길은 일본 호류사(法隆寺)의 가람 배치이다. 백제 양식의 절인데 고구려 승려 담징(曇徵, 579~631)이 그린 금당 벽화 사불정토도가 있다. 백제 관음입상도 만날 수 있다. 호류사에는 천년이 된 나무로 지은 절을 1400년 동안 대대로 지켜온 궁 목수 가문이 있다. 일본의 전통 건축은 ‘천년 동안 보존과 유지가 가능하게 축조해야 궁 목수로서 나무에 면목이 선다’고 알려주는 듯 하다.

눈 감은 허공에 그린 길을 작가는 빠져나온다. 이는 나무의 두 가지 생명, 자연의 생명으로서 수령과 목재로 사용된 이후의 생명 연수가 같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는 견딤의 미학이다. 견딤은 쓰임을 마주하게 한다. 우리의 생애주기에서 청년기는 이 ‘견디어 냄’을 말해야 한다. 작가의 작업 의지 또한 이와 같지 아니한가!

인류가 공동으로 보존해야 할 책무를 지니고 지켜내야만 하는 세계문화유산 목록의 우리나라 조선왕조 궁궐과 옛 건축물에 배치된 배흘림기둥의 지혜를 본다. 세월을 견뎌낸 흔적, 뒤틀린 나무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한국의 옛 건축가들! 그리고 대목장의 혼을 숲 길을 따라가 본다. 숲이 있는 길에 서서….

작가의 나무는 ‘견디어 내는 시간’이 ‘쓰임의 시간’과 합쳐지는 때 그 쓰임을 결정한다. 미래의 ‘나’와 ‘우리’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다. 인간과 사물을 바라보는,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체험의 또 다른 나무를 작가는 작품에서 나타내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면 천 번을 찍어라. 그리고 무심으로 길을 가라. 또 다른 나무를 찾아…

 

포토그래퍼 김정호 작가

사단법인 한국사진작가협회 정회원

<포토저널> 특집국장 겸 고양지국장

월간 <안전세계> 취재본부장

고양사진문화발전회 회장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KNA최고위과정 사진담당

 

현대사진가 5인전, 상암DMC

2013 고양 600년 기념 대표작가 5인 사진전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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