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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관계 위에 놓이는 특수한 관계

  • 입력 2024.03.15 15:26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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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치료자 – 환자 관계는 특수한 것이긴 하지만 언제나 일반적 관계 위에 놓여야 합니다. 친절과 존중이 기본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환자는 심각한데 치료자가 식당 직원이 손님 맞이하듯 무턱대고 친절하게 구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괴로움에 처한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친절과 존중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환자가 25세 이하이면 보통은 말을 놓습니다. 만나자마자 바로 놓지는 않고 우선은 ‘-했는가’ 하다가 나중에 말을 놓습니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60대 사람이 20대 사람을 만나면 편한 사이에서는 말을 놓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래서 20대 환자도 60대인 제가 말을 좀 놓아야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언젠가는 30대 후반인 환자가 말을 좀 놓아달라고 부탁하기에 그렇게 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편하려고 말을 놓은 게 아니라 말을 놓는 게 환자를 편하게 하고 존중하는 거라 판단하고 말을 놓을 때도 있습니다.

치료자는 환자를 만날 때 ‘지금이 마지막이다, 내일은 없다’ 는 마음가짐이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초조해지는 말고,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로 환자를 만나야 합니다. 만남이 타성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여 몇 번을 만나든 항상 적절한 건강을 유지하며 환자에게 묘한 느낌을 줘야 합니다. 치료자를 만나고 나면 뭔가 새로운 것을 느끼고 알게 되는 경험을 치료가 끝날 때까지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면담이 거듭될수록 환자를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공감을 통한 이해, 그 토대 위에서 이뤄지는 늘 새로운 만남이라는 선순환이 계속되면 치료적인 힘을 발휘하는 정확한 이해가 쌓입니다. 치료 관계에서는 정확하게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구나!’ 라고 느끼는 경험이 환자 치료에서는 중요하다고도 볼 수 있어 환자에 대한 이해 자체로도 치료가 진행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정신치료를 심리적 수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치료자가 환자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항상 주시하면서 긍정적인 면은 살리고 부정적인 면은 고치기 때문입니다. 치료자는 환자를 다시 만날 때 이전 만남과 비교해 환자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면 격려를 하는데, 가족이나 친구 같은 주위 사람들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거나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작은 변화도 캐치하며 같이 기뻐하는 적절한 반응을 하면 그 자체로도 굉장한 치료 효과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자는 민감하게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환자는 ‘건강한 인간관계’ 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살아가면서 그런 인간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프로이트는 정신치료란 부모가 자식 키우듯 환자를 다시 키우는 일이라 했습니다. 환자의 문제 상황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치료자가 환자에게 건강한 인간관계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래야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교정적 정서 경험’ 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정적 정서 경험이란 정신분석가 프란츠 알렉산더가 말한 개념으로, 과거 어떤 상황에서 했던 부정적 경험이 누군가의 삶에 아주 안 좋은 영향을 주었다면, 이번에는 치료자나 의미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같은 일에 대해 새롭고 건강한 경험을 함으로써 그 사람의 삶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정신치료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 나오는 장발장이 바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한 그는, 출소 후 하룻밤 머무른 성당에서 물건을 훔쳐 달아났다가 곧바로 경찰에 붙잡힙니다. 하지만 성당의 주교는 은촛대는 왜 두고 갔느냐며 장발장에게 은촛대까지 건넵니다. 이 경험 으로 장발장은 세상에 대한 적대를 내려놓게 됩니다. 정신치료 상황에서도 환자가 이런 일을 경험할 수 있어야 성공적인 치료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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