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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죽음을 구하는 힘

  • 입력 2022.09.15 10:46
  • 기자명 김영숙(정신건강의학전문의/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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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미국의 정신과 학문은 역설적이지만 전쟁을 통해 발달됐다. 전쟁은 죽음을 눈앞에 둔 극한 상황이다. 그러면서도 희망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정신과 의사들은 인간이 비상시에 얼마나 나약해지는가를 보았다. 그러나 적절하고 시간에 맞는 적당한 치료를 통해 이들이 용감하게 싸움터에 되돌아간 기적도 경험했다. 이들 의사 중 한 명이 칼메닝거이다. 그는 인간이 얼마나 파괴적으로 될 수 있는가를 목격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일생 동안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면서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세 가지의 욕망이 있다고 보았다.

첫째 죽고 싶은 욕망, 둘째가 죽이고 싶은 욕망, 셋째는 죽임을 당하고 싶은 욕망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파괴시키는 행동들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채로 계속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은 우선 ‘격리’를 상징한다. 아무 것도 없는 외롭고 텅 빈, 버려진 상태이다. 또한 죽음은 무(無)를 뜻한다. 완전한 허무의 상태이다. 죽음은 또한 위험을 의미한다. 파괴될 수밖에 없는 연약함에 대한 분노와 함께 엄습해오는 막연한 위험 의식, 무언가를 찾아 분노를 해소해야 될 것 같은 노여움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시절부터 위험한 짓들을 알게 모르게 저질러 왔다. 물론 이것이 모두 파괴적인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파괴적 행동은 다음과 같다.

▲과도한 마약이나 음주 복용, 그리고 그에 따라 오는 심각한 사고나 부상 ▲훈련도 받지 않는 채로 위험한 무기를 소지하거나 아니면 자동차나 다른 물체를 통해 생명에 위협을 끼치는 행위를 할 때 ▲중요한 약물 복용을 잊어버리거나 의사의 충고를 따르지 않는 경우, 좋은 예가 당뇨병 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잊어버리거나 천식환자가 담배를 피는 경우 등이다.

외롭고 인생이 힘들 때일수록 내 옆의 사람을 사랑하자

자살이란 자신의 파괴적 행동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마지막 단계이다. 그리고 정신과에서 가장 긴급한 응급현상이다. 자살하려다가 구출된 사람들은 대부분 객관적인 자살의 이유를 부인한다. 그들이 말하는 죽어야만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어떤 것도 확실히 되거나 진단이 충분하지는 못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자살하려 했음을 부인한다. 따라서 자살이라는 진단을 내리는 데 있어 뚜렷한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는 필요 불가결한 사항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주위의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분노와 ‘원수 갚음’을 표현한다.

닥터 메닝거의 말대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순간적으로 죽고 싶거나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그렇다고 특별히 어떤 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극심한 절망이나 살의, 지친 마음, 자신에 대한 모멸감, 분노, 외로움, 추방된 듯한 심정 등이 어느 순간에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을 뿐이다. 즉 자신의 내부로부터의 요인이 중요하다.

세계 대전 도중에 영국의 런던 시내가 6개월간 계속해 독일군의 폭탄 공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계속되는 폭탄 공격으로 런던 시민들은 밤에 불을 결 수 없고 죽음 같은 나날을 지내야 했다. 그런데 이 처참한 시기 동안에 자살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서로 아끼는 가족들과 이웃, 또는 시민연대의 끈끈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따스함은 인간에게 늘 상주해 있는 자신의 파괴 본능으로부터 해방을 맛보게 했는지도 모른다.

외롭고 인생이 힘들 때일수록 내 옆의 사람을 사랑하자. 그것만이 죽음으로부터 확실한 구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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