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감귤(柑橘)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 입력 2022.01.13 12:28
  • 기자명 신종찬(신동아의원 원장/의학박사/수필가/시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흰 봉우리는 아스라이 높은 하늘에 닿아 있었고, 푸른 바다도 아스라이 넓은 하늘에 닿아 있었다. 바다가 지척에 보이는 키 높은 삼나무 숲길을 지나며, 차창 문을 조금 열자 숲 향기 묻은 짭짤한 바닷바람이 창문을 비집고 들어왔다. 택시는 바닷가 한 호텔에 섰고, 주변 감귤 밭에서 따스한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긋한 감귤향이 상큼하였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석양은 먼 들녘에 내리네.

염소의 무리는 이상한 수염을 흔들며

산을 내려오네. =중략=

종이 울리네. =중략=

이 석양이 지나면 또다시 우리들은

아침을 맞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지고

촛불 위에 눈이 내리네,

눈 위에 순록의 썰매는 달리고.

그리하여 우리들도 어제의 소녀가 아니고

오렌지 향수가 하늘에 지듯

우리들의 향기도 지리.

=하략= <오랜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황금찬>

이 시는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 중에서 합창곡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 Gli aranci olezzan>는 서곡을 형상화한 시다. 은은하고 청아한 교회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시작하는 서곡이 연주되면, 장내는 매우 평화스럽고 전원적인 공간이 된다. 뒤이어 청년과 처녀들이 나타나 춤을 추면서 노래한다. 여성과 남성, 그리고 여성이 번갈아 화답하듯 노래를 부르자, 그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온화하고 따사롭다. 가사 또한 지극히 평온하고 사랑스러워 ‘오렌지 향기에 신록을 짙어가고, 종달새 노래에…, 봄을 속삭이는 사랑의 노래…’라고 노래한다.

오렌지는 귤(citrus)의 한 품종이다. 둘 다 운향과(蕓香科)에 속하며 서로 교배가 되는 같은 과 나무다. 귤(橘)나무에 대한 우리나라의 기록은 아주 오래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 탈해왕 5년(서기 61년)에 일본에 귤을 전했다고 한다(강희안(姜希顔, 1417~1464)의 양화소록(養花小錄)/규장각, 새로 읽은 우리 고전. 2012≫). 고려의 이인로(李仁老)가 ≪파한집(破閑集)≫에서 ‘금마문(金馬門)을 나서 어화원(御花園)에 이르렀을 때 귤나무 한 그루가 보였는데, 높이가 한 길이고 맺은 열매들이 매우 많았다.’다는 기록과 함께 12운(韻)의 시로 남겼다. 이 시에서 사마천의 ≪사기(史記)≫ <안자춘추(晏子春秋)>의 남귤북지(南橘北枳)의 고사를 인용하며 ‘항상 변함없이 푸르고 향기로 지조를 잃지 않는 점’을 충신(忠臣)에 비유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귤을 북쪽에 심어도 탱자가 되지는 않는다.

지금이야 귤이 흔하고 그리 비싼 과일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아주 비싼 고급과일이었다. 4.19혁명 이후 당시 지탄을 받던 이기붕씨의 집에서 귤 한 박스가 나왔다는 사실이 뉴스가 될 정도로 귤이 귀한 과일이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귤이 많이 생산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귤나무를 대학나무라 했다. 대학을 시킬 수 있을 만큼 고수입 작물이었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에서도 귤나무는 고수입 작물이었다고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화식전(貨殖傳)>에 촉한(蜀漢) 강릉(江陵)의 귤나무 천 그루는 천호(千戶)의 식읍(食邑)을 주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옛날 중국에서는 귤을 충신에 비유하였다. 그 중에서도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굴원(屈原)은 임금에게 충성을 다했으나 간신들의 모함으로 강남으로 유배(流配) 간 심정을 귤송(橘頌)으로 ‘층층 가지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돋았는데, 둥그런 과일이 열렸네. 푸른빛과 누른빛이 뒤섞여, 그 문양 찬란하여라(층지염극層枝剡棘, 원과박혜圓果博兮, 청황잡유靑黃雜揉, 문장난혜文章爛兮)’라 하였다. 여기서 둥근 과일과 날카로운 가시가 대비를 이루고 있는 것을 굴원이 문무(文武)를 다 갖춘 인물이란 뜻이라 한다. 다산(茶山)이나 추사(秋史)도 유배지에서 굴원의 초사(礎辭)를 읽었고 유배문학에 귤송을 인용한 여러 작품들을 남겼다.

조선시대 세종(世宗)도 전통적으로 귤을 하사하는 행사를 통하여 학문을 진흥하고 군신간의 화합을 도모하였다. 1448년 봄 세종이 한강의 희우정(喜雨亭)에서 집현전 학사들에게 술을 내리고 대군들과 찬치를 벌렸다. 이때 동궁이었던 문종(文宗)이 귤을 쟁반에 담아 하사한 후 ‘향나무는 코에만 향긋하고(전단편의비 栴檀偏宜鼻) 기름진 음식은 입에만 맞는 법(지고편의구脂膏偏宜口), 가장 좋은 것은 동정의 귤이라(애최동정귤愛最洞庭橘) 코에도 향긋하고 입에도 좋다네(香鼻又甘口).’라는 시를 지었다. 세종으로부터 귤을 하사 받은 강희안도 부친에게 귤을 드린 후 그 씨를 심어 싹을 내고 나무를 키운 과정을 ≪양화소록≫에 남겼다. 옛날 기록에 의하면 무려 15가지 이상의 제주 귤들이 있다한다.

인도와 티벳남부가 원산인 귤나무는 변종이 아주 많아 크기, 맛 향기가 아주 다양하다. 불경(佛經)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귤나무를 기르는 방법에 비유하여 불법을 닦는 이치를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귤나무를 재배한 지는 아주 오래되었다고 한다. 귤의 한 품종인 오렌지는 15세기경에 말레이반도에서 포르투갈인들에게 전해져 스페인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다. 이 오렌지 덕분에 대항해시대가 열릴 수 있었다. 오랫동안 항해를 하는 선원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파도가 아니라 괴혈병(壞血病 Scurvy)이었다. 이 괴혈병이 채소나 과일을 먹은 선원들에게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원들의 경험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서구 열강들은 먼 곳을 항해하는 배에는 비타민C가 아주 풍부한 오렌지를 싣도록 법으로 정했다. 이때는 아직 비타민C 부족이 괴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이전이었다.

괴혈병은 비타민C가 전혀 없는 음식을 먹은 지 20∼40일 이후에 나타나며 팔과 다리의 모낭 주위에 출혈이 생긴다. 비타민C는 콜라겐(collagen)형성에 아주 중요하다. 콜라겐은 조직세포를 서로 결합시키는 단백질로서 피부, 뼈, 연골, 치아, 결체조직 등에 많이 함유되어 있다. 이 콜라겐이 결핍되면 세포 간 물질과 콜라겐 합성에 장애를 받아 모세혈관이 쉽게 파열되고 피부, 점막, 내장기관, 근육에서 출혈이 생기며 체중 감소, 면역 기능 감소, 상처 회복 지연, 고지혈증, 빈혈 등이 나타난다. 특히 당뇨환자에게도 합병증을 막기 위해 꼭 필요하다.

1986년 이른 봄 택시비를 아끼려 제주공항에서 다른 신혼부부와 동승한 아내와 나는, 항공사가 운영하는 서귀포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방에 도착하자 테이블 위에 노란 감귤들이 우리를 반겼다. 당시는 요즘처럼 신혼여행을 해외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고, 신혼여행으로 제주도에 가는 것도 호사였다. 귤 또한 이국적이고 귀한 과일이었다.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동양인들에게 괴혈병은 드물지만, 비타민C는 항산화제로 노화를 막아주고 피부를 깨끗하고 탄력 있게 해준다. 당뇨병이 있는 나는 요즘 1,500mg의 비타민C를 거의 매일 먹고 있다.

저작권자 © 엠디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