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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플 때 마음이 아프지 않는 법

  • 입력 2021.12.07 11:42
  • 기자명 전현수(송파 전현수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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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디저널]

나꿀라뻬따 경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든 것입니까?

장자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여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는 ‘나는 물질이다. 물질은 내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물질이다. 물질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자의 물질(몸)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그는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관찰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는 나는 느낌이다. 느낌은내 것이다.' 라는 [견해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느낌이다. 느낌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자의 느낌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그는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는 ‘나는 인식이다. 인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인식이다. 인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자의 인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그는 심리현상들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심리현상들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심리현상들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심리현상들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는 ‘나는 심리현상들이다. 심리현상들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심리현상들이다. 심리현상들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자의 심리현상들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그는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가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는 ‘나는 알음알이다. 알음알이는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이처럼 ‘나는 알음알이다. 알음알이는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힌 자의 알음알이는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 가기 때문에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납니다.

장자여, 이것이 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든 것입니다.”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은 것 입니까?

장자여, 여기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능숙하여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물질이다. 물질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는 물질이다. 물질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의 물질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느낌이다. 느낌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는 느낌이다. 느낌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의 느낌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인식이다. 인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는 인식이다. 인식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의 인식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심리현상들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심리현상들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심리현상들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심리현상들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심리현상들이다. 심리현상들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는 심리현상들이다. 심리현상들은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의 심리현상들은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가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는 ‘나는 알음알이다. 알음알이는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나는 알음알이다. 알음알이는 내 것이다.’라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은 자의 알음알이는 변하고 다른 상태로 되어가지만 그에게는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장자여, 이것이 몸은 병들었지만 마음은 병들지 않은 것입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꿀라삐따 장자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사리뿟따 존자의 말을 크게 기뻐하였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안 아파야 합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그 방법을 잘 설명했습니다. 몸을 잘 관찰하고서 ‘아, 이것은 내 말도 안 듣고 자기가 처한 조건에 따라서 변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괴로움도 안겨준다.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알고, 이 앎을 항상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에서 어떤 변화가 올 때, 예를 들어 감기로 몸이 아플 때 ‘몸은 원래 그런 거야.’ 하고 수긍하게 됩니다. 어디가 찢어져서 피가 흐르면 ‘찢어지면 쓰라리고 피가 나는 거야.’ 하고 그대로 아는 거예요. 있는 그대로, 몸은 원래 그런 거야 하면서 전혀 동요가 없는 상태가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안 아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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